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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1 THIS IS CHUNGMU

THIS IS CHUNGMU

















난 아직도 통영이 통영이라 불리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의 기억은 분명 충무이기 때문이다.
통영이라는 지명은 내가 중딩 1학년때 통영군과 충무시가 통합되면서 통영이라 불리우기 시작되었다.
내 유년의 수많은 기억들은 다 충무라는 이름 아래 머리 속에 알알이 맺혀 있다.
아리고 아린 장면들.

다른 사람들 기억은 모르겠는데 내 유년의 시간(초딩)은 1982년 이후로 살아오는 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선생님에게서 특별한 잘못도 없이 풀스윙 뺨치기나 풀스윙 쇠빠따, 걸레밀대로 찜질을 많이 선사 받았던 시기.
나.
불량학생이었나.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때 당시도 엄마들은 누구네 아이가 컴퓨터 한다면 컴퓨터, 피아노 한다면 피아노, 미술 한다면 미술학원 다 보냈다. 울엄마는 다행스럽게도 열심히 학원을 보내진 않았지만 웅변학원은 한번 보내준 적이 있었다. 2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당시의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말을 많이 안했다. 엄마는 그때 유행하던 웅변학원을 그리로 곧장 보냈다.
기억나는건 일어나 큰 목소리로 무슨 대본같은 걸 읽는것이었는데 마지막 장면은 항상 두 팔을 윗방향으로 크게 펼치면서 이 연사 외칩니다- 하는 장면이다. 이후 학교에서 발표란 발표는 손 다들고 적극적으로 수업해서 선생님에게 귀염받는 아이로 바뀌었다.

잘 가다 삼천포로 왜 삼천포로 빠지니.
4학년이 되었다. 조례 후 1교시 시작하기 전 어떤 남자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잠시 조사할 것이 있다고 했다. 축구부 창단을 한다고 하면서 설명을 했고.. 결국 손을 들라고 했다. 아무도 들지 않았다. 나는 자신있게 오른팔을 높이 들어 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했다. 4학년 3반 이명현. 내 신상을 적고서는 수업 끝나고 조회대 앞으로 오렴. 나는 평소때와 다름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설레는 마음으로 운동장으로 갔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도 없었다. 아는 사람은 아까 그 선생님뿐인데 당연한 거겠지만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한명, 한명 호명하며 확인하더니 다짜고짜 운동장 스무바퀴를 시켰다. 진짜 사나이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계속 달렸다. 그렇게 2년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스무바퀴를 돌았다.
툭 하면 오전수업에 오후수업 끝나고서는 일곱시 즈음 마치기도 하고 토요일 훈련도 했고, 방학도 절반 이상 반납하며 그렇게 훈련, 훈련. 같이 축구하는 친구, 선배들과 하루종일 함께 하니 자연스럽게 축구외에도 같이 놀고 친하게 되었다. 그에 반해 반 친구들과는 점점 이상한 관계로 변해갔다. 당시 축구부 하면- 공부를 뒈지게 못하거나 싸움전교 1,2등 하거나 운동 잘하는 친구들이 주로 가는 곳이라 사람들. 선생을 비롯해 반 친구들 대부분이 축구부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불량학생, 문제아, 싸가지없는 놈 등.. 선생님들에게서 욕을 듣고, 참 많이 맞고, 상처의 말도 많이 들었고, 친구들은 다 나를 피했고, 도시락은 늘 혼자 먹었다.
나.
불량학생이었나.

엄마는 학교생활을 물어보았다 당연히.
거짓말을 못했다. 그 나이에 힘들고, 괴롭다고 했다. 학교에 가서 축구부 그만두게 할거라고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별 그지같은 오기 때문에 엄마를 설득하고 계속 축구부 생활을 했다. 축구가 정말 재밌고 점점 좋아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통지표의 공부성적은 그에 반비례했다. 축구코치는 훈련을 하며 누군가 실수하면 늘 욕을 하거나 때렸다. 나는 많이 당하진 않았지만 동료가 한번은 심하게 당하는 걸 보고 충격먹기도 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여전히 괴롭다.


가끔 다른 학교와 연습시합을 했다. 선발 출전은 거의 99% 5학년과 6학년이었다. 한해가 바뀌고 두해가 바뀔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했다. 선배라서, 후배라는 이유가 다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5학년의 겨울이 되어 지역의 가장 큰 대회가 열렸다. 몇번을 이기고 두번을 졌다. 3등 했다. 우리는 많이 울었다.
그리고 해체 되었다.
단 한번도 경기를 해보지 못하고 축구와 안녕을 했다.

공부를 해야 했다.
6학년이 되어 수업을 듣는데 그 어떤 말도 알아먹지 못했다.
한 번은 고학년 중에 한글과 덧셈, 뺄셈 등 기본 수학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집중공부 시킨다며 공개적으로 강제모집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선생님의 말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먹었다. 수업을 마치고 어두운 교실에 따로 남아 선생님 앞에서 국어책을 또박또박 읽어 보였고 이이는이, 이삼은육, 이사팔 구구단을 외워 보였다.
지독히 괴롭고 외로웠다.
까까머리로 깎고 교복을 입고 다른 학교로 가기 전까지.























요즘 주변 만나는 사람마다 "통영? 우와-", "통영? 우와-" 하니까 옛날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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