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that I am sterdam

Excuse me, could you tell me where is this way?

여행을 하는동안 무수히 물었던 길. 호스텔 가는 방법이 적힌 글과 약도를 폰에 저장한채 걷고 또 걸었던 길.

윤모를 만나기 전 3시간 동안의 아침. 지하철역, 트램, 철물점 앞, 마트, 커피숍에서 길을 가르쳐주고, 화장실을 쓰게 해주고, 와이파이를 쓰게 해준 사람들. 그리고 거리를 누비는 수많은 자전거의 행렬과 파란 나무, 흐린 하늘, 거센 바람.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3시간, 고흐미술관에서의 3시간, 베를린으로 떠나기 전의 2시간. 총 8시간이 암스테르담에서 머무른 7일동안 홀로 있었던 시간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도시,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적었다. 그런 경험은 대개 홀로일때 더 진실하게 또는 객관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윤모와 함께 보낸 시간은 환상적이었다. 그의 사물, 환경 등에 대한 시선은 내게 좋은 공부이자 자극이었다. 어떤 대상을 두고 다른 이와 그것에 대한 생각을 서로 얘기하고 들어보는 일은 매우 유쾌하다. 우리 둘은 며칠동안 축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며, 파스타를 먹으며, 자전거를 타며, 걸으며, 쇼핑을 하며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암스테르담에서 만나기 전 우리는 서로 만나 얘기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지내는 시간동안 즐거웠다. 여행자와 여행자가 만난 이야기 또는 여행자와 생활자의 이야기. 내 자신은 아무래도 여행자에 가까운 생활자였을테고 윤모는 생활자에 가까운 여행자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본다.

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지만 도시에 대한 정보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정보는 '랜드스케이프'라는 용어였다. 물론 히딩크와 풍차의 이미지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막연한 상상이었고 도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전혀 없었다해도 무방했다. 그렇다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부산과 서울이라는 도시를 걷고 걸으며 이해했듯이 암스테르담 또한 두 발로 경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서였을까. 윤모와 나는 서로를 찾다 결국 동네 로터리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7일간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윤모는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그는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윤모는 픽시(Fixed gear bike ; 고정기어 자전거) 1대와 클래식 스타일의 싸이클 1대를 가지고 있다 말했다. 이번 여행에 그는 자신의 픽시를 데리고 왔다. 실은 나도 나의 자전거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여행 전에 심히 고민했었다. 아끼는 자전거와 함께 여러 도시들을 함께 돌아다니는 것을 늘 상상해오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비교적 장기여행이기도 하고 나라와 나라를 이동하는데 있어 고충이 생길 것 같아 포기했었다. 그러던 중에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있는 윤모가 잠시 부러웠었다. 하지만 곧 중고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니면서부터는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기 전 예상은 했지만 이 도시는 자전거와 함께할때 그 매력이 더 풍부하다는걸 느꼈다. 사람들의 주교통수단이 자전거라는 사실은 짧은 시간 도시에 머물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하나는 자전거가 도시라는 실체와 사람이 만드는 '관계'를 매우 유동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걷기로는 불완전, 부족한 도시와의 '대화'를 자전거가 더 풍부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사실 서울에 있을 때는 이러한 느낌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서울의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떄문이다.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신호를 지키고 안전하게 탄다고 해도 실상 목숨을 내놓고 타는 것과 같다.(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전거에 관대하지 않으며 그들의 운전 또한 기본적으로 거칠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전거타기를 더욱 꺼려한다. 아무튼 암스테르담에서의 자전거는 사람과 도시 서로를 생활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한다. 또다른 하나의 생각은

 매일 거리에 나설때마다 이를 확인하며 놀라고 감탄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했다. 서울에서, 한국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저항하듯 자전거를 타는 나와 친구들이 상상하던 그런 모습의 도시. 그야말로 '자전거 천국'. 걸음마를 떼고 나면 곧바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기들, 건물 앞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는 수많은 자전거들, 디스코펍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검지손가락 찌르기를 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자동차, 트램, 자전거 그리고 보행자. 그들의 약속된 흐름(동선)은 정교하게 구성된 하나의 오페라를 떠올리게 했다. 도시에 머무는 내내 유쾌한 극(劇)을즐기는 기분이었다.

암스테르담을 방문한 시기는 여행의 끝부분이었다. 지중해 연안의 나라-도시들을 돌아 파리를 거쳐 베를린에서 머물고 있던 내게 암스테르담은 도시로서의 도시 그 자체였다. 갑자기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적어버렸는데 저 말의 의미는 여태 많은 사람들의 책과 웹의 여러 글들을 찾아 탐독해오던 내게 암스테르담은 하나의 도시계획의 실질적 현장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의 도시 혹은 도시계획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은 매우 (극)물질적이고 비인간적인 비자연적인 일종의 파괴(폭력) 행위(들)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에 머무는 동안 입을 벌리며, 소리를 내며 감탄을 했던 이유는 사람들의 생활과 도시가 매우 유기적일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또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암스테르담 이전 방문한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로마시대 이후로 광장과 교회 대로를 중심으로 중심과 주변부, 계층간의 분리가 이루어진다. 그에 반해 비교적 젊은 도시인 암스테르담은 도시 내 구역별로 용도는 다를지 몰라도 전체적인 그림에서 보면 중심부와 주변부가 따로 없다는걸 알 수 있다. 물론 중앙역 근처에 관광객과 더분어 상점이 많기는 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도시 구석구석에 뻗어 유유히 흐르는 크고 작은 운하들과 공원들의 중요성, 가치를 뜻한다.

윤모와 함께 지내는 집은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조용한 동네였다. 아파트의 2층에 우리는 머물렀는데 차소리는 귀기울여 들어도 듣기 힘들고 이따금 거위들의 꽥꽥거리는 소리와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동네였다. 방에서 내려다보는 작은 운하는 호수로 이어지고 호수는 또다시 어디론가 흐르고. 통영, 부산, 서울에서 살아오면서 바다나 한강을 가까운 거리에서 접하기 위해서는 마음먹고 버스-지하철을 타고 나가야 했다. 좀 더 편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한강변의 비싼 아파트를 구입하는 편이 좋다는걸 알고 있다. 값비싼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면 강이나 바다는 여전히 그저 관조의 대상이다. 3호선이나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다 어쩌다 마주치게 되는 갑자기 환해지는 풍경. 자전거를 타고 암스테르담의 구석구석을 돌면서 연신 감탄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었다. 자연과 도시 그리고 사람간의 유기적(적극적)인 관계. 여타 유럽의 다른 도시들보다 더욱 유동적이고 꿈틀거린다는 느낌.

조용한 듯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이는 도시. 물이 흐르고 사람이 도시와 이야기를 하는 도시. 다시 갈 수 밖에 없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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