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2


















미주는 아침 출근시간이 한시간도 더 지나서야 사무실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4층 여자화장실 옆 502호가 낮시간 동안 미주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미주가 유리문을 소리없이 열고 살금살금 걸어가 자기 자리로 움직이는 찰나, 갑자기 창쪽 자리에서 "미주씨, 손님 와 계시니까 여기 일단 냉커피 두잔만 타줘." 라며 우렁창 소리가 들려왔다. 미주는 그에 대해 대꾸도 않고, 가방을 내려놓고 곧바로 탕비실로 걸어갔다.
여름에는 프라스틱 곽에 물을 부어 냉동실에 넣어두는 일이 하루 일과의 마무리였다. 전날 넣어두었던 물은 그새 용기와 일심동체가 된건지 쉽사리 분리되지 않았다. 두 손으로 곽을 동쪽, 서쪽 아무리 비틀고 달래보아도 얼음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날은 그렇게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날이었다. 미주는 결국 부장에게 얼음때문에 커피를 만들 수 없다고 얘기했고 김부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직접 얼음을 분리해내고 커피를 타서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미주는 김부장이 쪼개어 놓은 얼음조각 두 개를 가지고 냉녹차를 만들었다. 뜨거운 물에 우려진 녹차에 차가운 물을 부어 벌컥 단숨에 마시고는 다시 한 번 티백을 뜨거운 물에 우려냈다. 그리고 이번엔 사지가 멀쩡한 얼음과 냉수를 넣고서 젓가락으로 두번 휘이 저었다. 그리고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피씨의 파워버튼을 꾹 눌렀다. 곧바로 컴퓨터의 요란한 소음이 예정대로 발생하고, 부팅화면이 차례대로 이어졌다. 잠깐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는데 김부장이 다시 부른다. "미주씨 이리 잠깐 와봐." 미주는 4초를 그대로 움직이지 않다가 일어서 김부장에게로 갔다. "이거 처음부터 55페이지까지 칼라복사해서 3부 만들어줘, 부탁해요." 미주는 한 손으로 책을 받아들고 바로 움직였다. 프린터는 여자화장실 맞은편 작은 창고에 있었다. 창고로 들어가 복사를 시작하는데 미주는 갑자기 갈증을 느끼고 하던 복사를 멈추고 탕비실로 들어갔다. 허리를 숙여 종이컵에 물을 따르고 있는데 벽너머로 김부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미주씨 잠깐 이리 다시 와보라며 미주씨 미주씨 어딨어 하며 미주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미주는 김부장이라 불리우는 남자를 통해서 그 공간에서 불려지는 자신의 이름이 정말 애처롭다 생각했다. 이날 오전 이후로 자신의 이름이 미주 말고 미스리, 미스김처럼 미스박이라 불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주는 저 여깄어요 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고는 벽에 대고 힘을내어 얘기했다. "말씀하세요, 여기서 다 들려요." 그러자 김부장은 벽을 쿵 치며 "무슨 경리가 그리 대꾸를 달어 달기는. 잔말 말고 내자리로 얼른와." 했다. 미주는 다시금 힘이 빠졌다. 김부장은 에이포 종이 한장을 내밀며 말했다. 복사하기 전에 팩스 먼저 보내야 한다, 다녀와서 팩스수신이 됐는지 바로 확인전화하고 돌아오는 길에 담배 한갑도 잊지 않고 사오라며 삼천원을 내밀었다. 사무실에는 누렇고, 덩치만 큰 낡은 프린터 한 대와 유선전화 두 개가 있었고 팩스는 항상 맞은편 건물 지하 문방구를 이용해야 했다.
11시를 향해가는 시각 문방구는 한산했다. 아르바이트 남자 한명이 구석에서 물건을 정리하다 인기척을 느끼고 기계적으로 어서오세요 하며 맞이해 주었다. 미주는 작은 목소리로 팩스 좀 쓸게요 하고 팩스기 앞으로 갔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종이를 넣고 번호를 누르고 삐이- 소리가 울리기를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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